『소크라테스의 변론』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이 저술한 작품으로, 기원전 399년에 있었던 소크라테스(Socrates)의 재판과 그 변론을 담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 민주정에서 반역적인 사상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에 서게 된 배경에는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요소가 얽혀 있는데요, 당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에서 스파르타에 패배한 후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전쟁 후 과두정(Thirty Tyrants)이 잠시 세워졌으나, 곧바로 민주정이 복원되면서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는 움직임이 강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스파르타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오해받았으며, 그의 제자 중 일부(예: 크리티아)는 과두정 체제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반민주적 인물로 낙인찍혔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됩니다. 또한, 그는 전통적인 신들을 부정하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혐의를 받았는데, 이는 그의 철학적 방법론(문답법)이 기존의 신념과 전통을 흔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신들을 부정하고 새로운 신령을 도입했다"는 죄목과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500명의 배심원단 앞에서 자신의 변론을 펼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이 재판 과정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고 철학자로서의 신념을 고수하는 모습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혐의에 대해 변론하는 과정, 배심원단이 유죄 판결을 내린 후 형량을 제안하는 과정, 그리고 사형 선고 후 소크라테스가 최후의 말을 전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1) 첫 번째 변론: 혐의에 대한 반박
소크라테스는 우선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오래전부터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의 주장과 최근의 고소인들의 주장을 구분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통해 자신의 혐의를 반박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현명하다고 알려져 있다"
델포이 신탁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자신은 이 말을 믿지 않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아테네에서 현명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정치가, 시인, 장인 등을 만나면서, 이들이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존 권력층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사게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타락시킨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에게 특정한 가르침을 주거나 조직적인 교육을 제공한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단지 대화 속에서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도록 유도했을 뿐이며, 젊은이들이 그를 따르는 것은 그들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부정하고 새로운 신령을 도입했다"
그는 자신이 신을 믿지 않는다는 고소인의 주장이 모순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새로운 신령을 믿는다면, 기존의 신도 믿고 있어야 하는데, 이는 무신론자라는 주장과 상충된다는 겁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신탁을 통해 철학적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의 행위가 신의 뜻과 일치한다고 변호합니다.
2) 두 번째 변론: 형량에 대한 논의
소크라테스는 변론을 마친 후 배심원들의 판결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다수의 배심원들은 그를 유죄로 판결하며, 이제 그에게 적절한 처벌을 결정해야 하는 단계가 됩니다.
검찰 측은 사형을 요구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회에 큰 해를 끼친 것이 없으며, 오히려 아테네 시민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벌을 받기보다는 도리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해야 한다는 농담 섞인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는 벌금을 낼 만큼의 재산이 없었고, 제자들과 친구들이 대신 벌금을 내겠다고 제안했으나, 배심원들은 결국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3) 세 번째 변론: 사형 선고 후 최후의 말
소크라테스는 사형이 결정된 후에도 담담하게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유지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죽음은 무(無)와 같아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된다면, 이는 깊은 잠과 같아 고통이 없을 것이다.
죽음 이후에 영혼이 존재하고, 다른 위대한 인물들과 대화할 수 있다면, 이는 더 나은 삶일 것이다.
그는 배심원들에게 "악을 행한 자들이 벌을 받지 않고, 선을 행한 자들이 희생되는 것이 아테네의 현실"이라며 비판하지만,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나의 처형이 아테네에 더 큰 해를 가져올 것"이라며, 후대에 자신과 같은 철학자가 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단순히 한 철학자의 변론 기록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와 도덕적 신념을 끝까지 지키려는 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철학적 탐구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였습니더.
이 작품은 이후 서양 철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더욱 발전된 철학적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의견이 반드시 정의롭지는 않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개인의 비판적 사고와 양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철학적 고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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